고사기 이야기(줄거리)

서문

서문
『고사기』의 서문에 의하면 텐무(天武)천황(재위673~686년)의 발안에 따라 정확한 역사와 계보를 확립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해 사서 편찬을 기획했다. 천황은 이것은 국가운영을 위한 근본과 관련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당시 히에다노아레(稗田阿禮)라는 28세의 아주 총명한 인물이 있었다. 텐무천황은 히에다노아레에게 명하여 천황가의 연대기와 계보를 송습(誦習)하게 했으나, 천황 생전에 이 역사서는 완성되지 못했다. 그 후 지도우(持統)천황(재위690~697년), 몬무(文武)천황(재위697~707년)의 치세를 거쳐, 겐메이(元明)천황(재위707~715년)이 선대의 사업을 이어받아 와도(和銅)4년(711) 9월에 히에다노아레가 암송한 이야기를 오오노야스마로(太安万侶)에게 필록(筆錄)하게 하여, 이듬해 1월에 『고사기』가 완성되었다.

古事記の謎をひもとく 谷口 雅博 著
  ※谷口雅博『古事記の謎をひもとく』(弘文堂、2018年4月)より

상권

천지개벽
천지가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 타카마노하라(高天原) 라는 곳에 신들이 나타났다. 처음에 나타난 신은 아메노미나카누시신(天之御中主神), 그 다음으로 나타난 신은 타카미무스히신(高御産巢日神)이고, 그 다음으로 나타난 신은 카무무스히신(神産巢日神)이였다. 그 후 지상세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수면에 뜬 기름처럼, 또 해파리처럼 떠다니고 있을 때, 갈대싹이 트듯 나타난 신은 우마시아시카비히코지신(宇摩志阿斯訶備比古遲神)이고, 그 다음으로 아메노토코타치신(天之常立神)이었다. 여기까지 다섯 신은 「다른 신과 다른 특별한 천신(天神) 」이다.

다음으로 쿠니노토고타치신(國之常立神)과 토요쿠모노신(豊雲野神)이 나타났다.여기까지 나타난 일곱신은 모두 짝을 짓지 않고 단독으로 나타난 신으로, 그 후에 나타난 신은 남녀 한쌍의 신이다. 우선 우히지니신(宇比地邇神) ・여동생 스히지니신(須比智邇神), 다음으로 츠노쿠이신(角杙神) ・여동생 이쿠쿠이신(活杙神), 다음으로 오호토노지신(意富斗能地神) ・여동생 오오토노베신(大斗乃弁神), 그 다음으로 오모다루신(於母陀流神) ・ 여동생 아야카시코네신(阿夜訶志古泥神), 그 다음으로 이자나기신(伊耶那岐神) , 여동생 이자나미(伊耶那美) 가 나타났다.

신의 결혼
천신(天神)으로부터 국토를 수리하고 가다듬는 것을 명령받고, 아메노누보코(天沼矛)라는 창을 하사받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하늘다리에 서서 창을 하계에 향하여 내리고 휘저었다.그리고 들어 올렸을때 창끝에서 떨어진 소금이 쌓여서 섬이 되었다. 이것이 오노고로시마(淤能碁呂島)라는 섬이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오노고로시마에 내려 남녀의 교합을 통하여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하늘의 기둥을 둘러싸고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돌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두 신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으나, 처음으로 태어난 히루코는 갈대로 만든 배에 태워 강으로 흘려보냈다. 다음으로 태어난 아와시마(淡島)라는 섬도 자식의 수에 넣지 않았다.
이 두 신은 여신이 먼저 말을 건넨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천신에게 확인을 한 후 다시 결혼을 해서 국토를 낳기 시작했다. 아와지시마(淡路島), 시코쿠(四国), 오키노시마(隠岐島),큐슈(九州), 이키노시마(壱岐島), 츠시마(対馬), 사도노시마(佐渡島),혼슈(本州)를 낳고, 또 여섯개의 작은 섬을 낳았다. 그리고 또 여러 신을 낳았다. 신들을 계속 낳는 사이에, 이자나미는 불의 신을 낳고 드디어 병들어 눕고 말았다.
요모츠쿠니(黃泉國)
불의 신을 낳으면서 몸이 타버려 저세상으로 간 이자나미를 데리고 오기 위해, 이자나기는 요모츠쿠니(黃泉國)로 출발했다. 이자나기는 마중나온 이자나미에게 함께 돌아갈 것을 권유했지만, 이자나미는 이미 요모츠쿠니(黃泉國)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요모츠쿠니(黃泉國)의 신과 상담하고 오겠다고 하면서, 그 동안에 절대 안을 들어다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자나기는 계속 기다렸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이자나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자나기는 더이상 기다릴수 없어 왼쪽 머리에 꽂은 빗의 살을 하나 잘라서 불을 붙여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구더기가 욱실거리고, 몸의 여덟군데에는 무서운 뇌신(雷神)이 생겨나고 있는 이자나미의 모습이 있었다. 이자나기는 놀라 무서워서 인차 도망가지만, 이자나미는 자신의 모습을 본것에 대해 화를 내며, 요모츠시코메(저승의 추녀,予母都志許売)랑 뇌신(雷神)을 파견하여 추격하게 했다. 이자나기는 머리에 장식한 머리꽂이나 빗을 던지면서 도망쳤지만, 요모츠히라사카(黃泉比良坂)라는 언덕 초입에 도착했을 때에 결국 뇌신에게 따라잡혔다. 이자나기는 그곳에 있는 복숭아를 따서 던져 뇌신들을 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자나미가 직접 쫓아와서, 이자나기가 막아놓은 큰 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이자나미가 “하루에 천명을 교살하겠다.”라고 말하자, 이자나기는 “하루에 천오백개의 산실(産室)을 짓겠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인구 증가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스사노오노미코토
요모츠쿠니(黃泉國)에서 도망쳐 온 이자나기는 요모츠쿠니(黃泉國)의 부정을 없애기 위해 히무카(日向)의 아와키하라(阿波岐原)라는 곳에서 몸을 씻었다. 자신이 몸에 지니고 있던 것이나 몸에 부착한 것을 털었더니, 거기에서 여러 신이 나타났다. 마지막에 왼쪽 눈을 씻었더니 아마테라스오오미신(天照大御神), 오른쪽 눈을 씻었더니 츠쿠요미노미코토(月讀命), 코를 씻었더니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가 나타났다.
 귀한 세 신이 태어나자 이자나기는 매우 기뻐하면서, 아마테라스에게 타카마노하라(高天原)를, 츠쿠요미에게 밤의 나라 오스쿠니(食國)를, 그리고 스사노오에게 우나하라(海原)를 다스리도록 명했다.
 그런데 스사노오는 자기는 죽은 어머니가 있는 네노카타스쿠니(根堅州國)에 가고싶다고 하면서 울기만 했다. 그 탓에 아버지 이자나기의 노여움을 사서 추방되버렸다. 그 후 다카마노하라에 가서 누님을 방해하고, 난동을 부려 아마테라스로 하여금 동굴에 숨어버리게 한다. 다카마노하라의 신들의 노력하에 아마테라스는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왔지만, 그 원인을 만든 스사노오는 추방되버린다.
 그 직후 스사노오는 오오게츠히메신(大氣津比賣神)이라는 여신을 살해하고, 이즈모(出雲)에 내려온 후에는 야마타노오로치(八俣大蛇)를 퇴치하고, 오로치에게 잡혀먹힐뻔 한 여신을 구하게 된다.
하늘의 동굴 신화
스사노오가 다카마노하라(高天原)에 찾아 왔을때, 아마테라스는 “남동생은 분명 이 나라를 빼앗으러 온게 틀림없다”고 의심을 품고 있었다. 스사노오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서약을 해서 자녀를 낳자고 제안한다.
서로 갖고 있는 소지품(스사노오의 검, 아마테라스의 옥)을 교환하여 입에 물었다가 내뿜은 입김으로부터 스사노오는 다섯 남신을, 아마테라스는 세 여신을 태어나게 했다. 아마테라스는 태어난 자녀 신은 각자 소지품의 주인의 자식이 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스사노오는 자신이 여신을 낳았기때문에 자신이 이겼다고 승리를 선언하고, 기세등등해서 난동을 부렸다.
우선 아마테라스가 경작하고 있는 논밭을 방해하고, 논밭에서 수확한 벼쌀을 먹는 의식을 행하는 곳에 똥을 뿌렸다. 아마테라스는 처음에는 이를 책망하지도 않고 너그러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스사노오는 더더욱 난동을 부리면서, 베 짜는 작업을 하는 건물에 가죽을 벗긴 말을 던져버렸다. 이때 베짜기전에서 베 짜던 여신이 보고 놀라서 베틀의 북에 음부가 찔려서 죽고 말았다.
이를 보고 아마테라스는 드디어 동굴에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타카마노하라(高天原)도 지상세계도 암흑으로 변하고 말았다.
야마타노오로치 퇴치신화
다카마노하라(高天原)에서 추방된 스사노오는 이즈모(出雲)의 히(肥)강위의 토리카미(鳥髮)라는 곳에 내려왔다. 강의 상류로부터 젓가락이 흘러 내려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살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올라가봤더니 소녀를 둘러싸고 울고있는 노인과 노파가 있었다.
스사노오가 그들의 이름과 울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부부의 이름은 아시나즈치(足名椎)와 테나즈치(手名椎), 사이에 있는 것은 딸 쿠시나다히메(櫛名田比賣)입니다.”라고 대답했다.그리고 또 “우리에게는 여덟명의 딸이 있었는데, 매년 야마타노오로치(八俣大蛇)가 찾아와서 딸을 한명씩 먹었습니다. 지금 마지막 한명의 딸이 잡아먹히게 될 시기가 다가왔기에 이렇게 울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스사노오는 야마타오로치의 모습에 대해 묻고, 퇴치하기 위해서 계책을 꾸몄다.그리고 자신의 아내로 삼기 위해 딸을 바치도록 요구했다. 조금 후 노인이 말한 대로 야마타오로치가 나타나, 술을 마시고 취해 잠들어 버렸다. 스사노오는 야마타오로치가 잠든 사이에 검을 빼서 토막내어서 퇴치했다.
그 때 오로치의 꼬리에서 검이 한자루 나타났다. 보통 검이 아니라고 생각한 스사노오는 이 검을 천상계의 아마테라스에게 헌상했다. 이것이 바로 쿠사나기검(草薙剣)이다.
오오쿠니누시신 신화
쿠시나다히메(櫛名田比賣)와 결혼한 스사노오는 이즈모(出雲)의 스가(須賀)에 궁전을 짓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다. 자녀신은 또 잇달아 차세대의 자녀신을 낳아 간다. 이윽고 스사노오의 6세손으로서 탄생한 것이 오오쿠니누시신(大國主神)이다.이 신에게는 다른 이름이 네개 있었다. 오오아나무지신(大穴牟遅神), 아시하라노시코오신(葦原色許男神), 야치호코신(八千矛神), 우츠시쿠니타마신(宇都志國玉神)이다.
오오쿠니누시의 이야기가 시작할때 처음에 이름은 오오아나무지로 표기되었다. 오오아나무지는 많은 형제신들과 같이 이나바의 야카미히메(八上比買)에게 청혼하려고 떠났다. 도중에 상처를 입은 이나바의 벌거숭이 토끼를 구해주자, 이 토끼는 “당신이 야가미히메를 얻게 될것입니다.”라고 예언하였다. 그 예언대로 오오아나무지는 야가미히메로부터 청혼의 승낙을 얻었으나, 이로 인해 형제신들의 원한을 사고 말았다. 형제신들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오오아나무지는 두번 살해당했으나 두번 다 어머니신의 도움으로 소생한다.
그러나 여기에 있으면 정말 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하겠다고 걱정한 어머니신은 오오아나무지에게 스사노오가 있는 네노카타스쿠니(根堅州國)로 가라고 했다.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네노카타스쿠니로 떠난 오오아나무지는 스사노오의 딸 스세리비메(須勢理毘賣)를 만나 그녀와 결혼한다.
그 후 스사노오는 오오아나무지에게 몇번이나 시련을 주었다. 오오아나무지는 그때마다 스세리비메의 도움으로 그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스세리비메를 데리고, 스사노오의 거문고・활・화살을 갖고 네노카다스쿠네에서 탈출했다. 도망가는 오오아나무지에게 스사노오는 “자네는 내딸을 정실로 맞고, 그 활과 화살로 형제신들을 쫓아내고, 오오쿠니누시가 되고,우츠시쿠니타마가 되어, 훌륭한 궁전을 짓고 살거라!” 라고 말했다.
그 후 야치호코의 이름으로 코시(高志)의 누나카와히메(沼河比賣)에게 구혼하러 가는 이야기와 스세리비메의 질투를 그린 이야기가 4수의 노래와 짧은 산문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것을 “카무가타리”(神語)라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국토 양도의 신화
아마테라스는 전에 스사노오와의 서약을 통해 낳은 다섯 남신의 장남인 아메노오시호미미노미코토(天忍穗耳命)에게 “이 지상세계는 나의 아들인 오시호미미(忍穂耳)가 다스리는 나라이다”라고 선언하면서 파견했다. 오시호미미(忍穂耳)는 하늘의 부교에 서서 지상세계를 살펴 보고, 타가마노하라(高天原)에 올라가 지상세계는 아주 시끄럽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아마테라스와 타카미무스히신(高御産巢日神)은 타카마노하라의 여러 신들과 의논하여, “이 지상세계(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葦原中國)는 난폭한 국신(國神)들이 발호하고 있는 나라이다. 누구를 파견하여 복종시키면 좋겠느냐?”라고 물었다.

상의후 우선 오시호미미의 남동생인 아메노호히신(天菩比神)을 파견하지만, 이 신은 배신하고 상대방에게 달라붙어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아메와카히코(天若日子)를 파견하지만, 이 신은 자기자신이 스스로 지상세계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야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천상계에 쏜 화살이 다시 되돌아와 그 화살에 맞아 죽어버렸다.
세번째로 파견된 타케미카즈치신(建御雷神)은 오오쿠니누시도 그의 자녀신 코토시로누시신(事代主神) ・타케미나카타신(建御名方神)를 복종시키고, 국토양도를 성공시킨다. 오오쿠니누시는 “천신의 아드님의 궁전과 같은 웅장한 궁전을, 내 자신이 진좌할수 있게끔 지어 준다면 이즈모(出雲)에 은거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나라를 양도했다.

천손강림신화(1)
나라 양도의 교섭이 무사히 끝나자, 아마테라스는 자식 신을 강림시킬수 있게 된다. 아마테라스와 타카기신(高木神, 타카미무스히신의 별칭)는 당초 예정했던 오시호미미에게 다시 명령하자, 오시호미미는 자신에게 아이가 태어났으니 이 아이를 내려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 아이가 호노니니기노미코토(番能邇々藝命)이다. 니니기는 다섯 수행신과 함께, 아마츠쿠메노미코토(天久米命)・미치노오미노미코토(道臣命)를 선도자로 하여, 츠쿠시(筑紫) 히무카(日向)의 타카치호(高千穗)의 쿠지후루다케(久士布流岳)에 내려왔다.
천손강림신화(2)
츠쿠시(筑紫) 히무카(日向)의 타카치호(高千穗)의 쿠지후루다케(久士布流岳)에 내려온 니니기는 “이 땅은 한국을 향하고, 카사사(笠沙)갑으로 곧바로 통하고, 아침 해가 바로 비치는 나라, 저녁 해가 비치는 나라이다. 여기는 정말 좋은 곳이다.”라고 말하면서 훌륭한 궁전을 만들었다(이것이 타카치호궁高千穂宮이다).
히무카신화
히무카(日向)에 내려온 니니기는 그 후 가사사((笠沙)의 갑에서 어여쁜 여자를 만났다.
이름을 물었더니, 자신은 오오야마츠미신(大山津見神)의 딸이며 이름은 코노하나사쿠야비메(木花佐久夜毘賣)라고 했다. 니니기가 이 여자에게 구혼을 하자,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대답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듣고 아버지신은 아주 기뻐하면서 언니 이와나가히메(石長比賣)도 같이 시집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언니 이와나가히메는 얼굴이 못생겼기때문에 니니기는 여동생 사쿠야비메만 아내로 맞아들이고, 언니는 되돌려보냈다. 아버지신은 화내면서 “언니를 보낸 것은 천신(天神) 아들의 생명이 영원하기를 바래서이다. 여동생을 보낸 것은 천신 아들이 번영하기를 바래서이다. 지금 언니를 되돌려 보냈기 때문에 역대천황의 수명은 나무의 꽃처럼 덧없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니니기는 사쿠야비메와 하루밤을 같이 보냈다. 그러자 사쿠야비메는 하룻밤 사이에 임신을 했다.니니기는 이를 의심스럽게 생각하면서 “그 애는 지상 신의 애이지.”라고 말하면서 사쿠야비메를 비난했다.사쿠야비메는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창문이 없는 방에 들어가 불을 질러서 그안에서 출산을 했다. “이렇게 해서 만약 이 애가 무사히 태어나지 못하면 이 애는 지상 신의 애이겠지요. 만약 무사히 태어난다면 이 애는 틀림없이 천신의 아들인 당신의 아이일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출산을 했다.
드디어 무사히 태어난 것이 호데리노미코토(火照命, 즉 우미사치히코海幸彦), 호스세리노미코토(火須勢理命), 호오리노미코토(火遠理命, 즉 야마사치히코(山幸彦))였다.
그후에는 “우미사치 야마사치 신화”가 전개되고 결과적으로 형인 호데리가 동생 호오리에게 복종하게 된다. 이 호데리는 하야토(隼人)의 선조라고 한다.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鵜葺草葺不合命)의 탄생
호오리(火遠理)는 해신궁(海神宮)의 딸 토요타마비메(豊玉毘賣)를 아내로 맞이했다. 토요타마비메는 호오리의 애를 임신했지만, 천신(天神)의 애를 바다에서 낳을 수 없다면서, 해신궁으로부터 찾아왔다. 토요타마비메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출산할 때 본국의 모습으로 변해서 낳기때문에 저의 모습을 보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면서, 가마우지의 날개를 띠지붕으로 한 산실에 들어가서 출산을 준비했다. 그러나 산실이 완성되기전에 해산할 기미가 보여, 토요타마비메는 산실에 들어가 출산하려고 했다. “보면 안된다”라고 했지만 호오리는 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수 없어 그만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커다란 상어의 모습으로 변해 꿈틀거리고 있는 토요타마비메의 모습이 보였다. 히메는 무사히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鵜葺草葺不合命) 를 출산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는 것을 알고 부끄럽게 생각하여, 호오리를 원망하면서 해신궁의 세계로 돌아가 버렸다.

중권

진무동정
고사기』상권은,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鵜葺草葺不合命)와 타마요리비메(玉依比賣)사이에는 아들 넷이 태어나, 그중 차남 이나히노미코토(稻氷命)가 하하노쿠니(妣國)인 우나하라(海原)로 가고, 삼남 미케누노미코토(御毛沼命)가 토코요노쿠니(常世國)에 건너갔다 라는 부분에서 끝났다. 중권은 장남과 막내인 사남이 천하를 다스리는데 좋은 곳을 찾으러 동쪽으로 가자고 상담하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이 장남이 이츠세노미코토(五瀨命), 그리고 막내인 사남이 카무야마토이와레비코노미코토(神倭伊波禮毘古命),즉 진무(神武)천황이다.
일행은 타카치호궁(高千穗宮)에서 출발하여 츠쿠시(筑紫), 아키(安芸), 키비(吉備) 등을 지나 오사카(大阪)만에 들어서, 오사카쪽에서 야마토(大和)로 들어가려 했지만, 지방세력들의 저항하에 형 이츠세는 활에 맞아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때 형은 “태양신의 아들로서 태양을 바라보고 싸운것이 좋지 않았다. 지금부터 우회하여 태양을 등지고 싸우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뒤에 형 이츠세는 키노쿠니(紀伊國)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남은 일행은 키이(紀伊)반도를 남하하여 쿠마노(熊野)에서 야마토(大和)로 들어가려 했다. 쿠마노에 도달했을때 큰 곰이 나타나 일행은 정신을 잃었다. 그때 꿈에 타카마노하라(高天原)의 아마테라스(天照大神)와 타카기신(타카무스히의 별칭, 高木神)의 명을 받아, 검을 하사받은 타카구라지(高倉下)라는 자가 그 검을 바쳤다. 카무야마토이와레비코가 그 검으로 신을 무찌르자 병사들도 모두 깨어났다.
그후 타카기신이 하사한 야다가라스(八咫鳥)의 선도하에 국신(國神)의 복종을 받으면서, 반항하는 자를 평정하고, 야마토(大和) 우네비(畝傍)의 카시하라궁(白檮原宮)에서 즉위했다.
진무(神武)천황(초대)에서 스이제이(綏靖)천황(제2대)으로
진무(神武)천황 붕어후 타기시미미노미코토(多芸志美美命)라는 인물이 진무천황의 황후 이스케요리히메(伊須氣余理比賣)를 아내로 삼고, 진무천황과 황후사이에 태어난 세명의 아들을 죽이고 자기가 천황이 되려고 하였다. 자식들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라도 알려주고 싶었던 이스케요리히메는 타기시미미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 , 노래를 불러서 아들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아들들은 노래를 듣고 그 뜻을 알아채고, 타기시미미를 죽여버렸다.

스진(崇神)천황(제10대)
스진(崇神)천황의 치세에 역병이 유행하여 백성들의 죽음이 끊이질 않았다.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가 하고 고민하던 스진천황은, 어느날 밤 신의 뜻을 살피기 위하여 신상(神床)이라는 자리에서 자고 있을때, 꿈속에 오오모노누시신(大物主神)이 나타나 신탁을 내렸다.
그 신탁은 “이 역병은 나의 뜻이다. 지금 오오타타네코(意富多多泥古)를 찾아 와서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낸다면 이 재앙은 멈출것이며, 국내도 평안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였다.
천황이 사방에 사신을 파견하여 오오타타네코를 찾게 했더니, 카와치(河內)의 미노(美努)촌에서 발견했다. 오오타타네코에게 누구의 아들인가고 물어, 그가 오오모노누시신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를 신주(神主)로 명하여 오오모노누시신을 제사 지내고,야마토(大和)의 신들을 전부 제사 지내자, 신의 지벌은 사라지고,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은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천황은 그후 야마토의 국외에 장군과 병사를 파견하여, 복종하지 않은 자들을 모두 평정했다.파견당한 장군들은 임무를 마치고 야마토에 돌아와 각자 보고를 했다. 그 후 천황은 처음으로 백성에게 수렵물과 직물(織物)을 조세로서 바치게 했다. 이러한 사적으로부터 그 치세를 칭송하여 “처음으로 국가를 다스린 미마키(御眞木)천황”이라고 한다.
스이닌(垂仁)천황(제11대)
스이닌(垂仁)천황의 황후 사호비메(沙本毘賣)는 어느 날 오라버니 사호비코(沙本毘古)로부터 “남편과 오라버니 중 어느 쪽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사호비메는 오라버니를 더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호비코는 “그러면 나와 같이 천하를 다스리자.”라고 말하면서, 여동생에게 작은 칼을 주면서 천황이 잘때 목을 찔러 죽이라고 지시했다.
천황이 아무것도 모른채 사호비메의 무릎베개 위에서 자고 있을때, 사호비메는 목을 찌르려고 세번이나 칼을 들었지만, 천황에 대한 애정(哀情)을 참지 못하고 결국 찌르지 못했다. 놀라서 깨어난 천황이 자기가 금방 꾼 이상한 꿈에 대해 말하자, 사호비메는 꿈을 해몽하면서 자기와 오라버니 사호비코의 계책을 몽땅 털어놓았다.
천황은 병력을 모아 사호비코를 치려고 했다. 사호비메는 오라버니에 대한 애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라버니가 숨어있는 이나키(稻城, 볏단을 쌓아올려 만든 성)로 들어갔다. 실은 이때 사호비메는 임신하고 있었다.천황은 사호비메가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 사호비메에 대한 사랑으로 사호비코를 공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호비메의 아이가 태어났다.사호비메는 “이 아이를 천황의 아이라고 생각하시면 받아들여 키워주세요.”라고 청원했다. 사호비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천황은 가신들에게 왕자를 넘겨받을 때 사호비메도 같이 데려고 올것을 명했다. 그러나 사호비메가 이미 천황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신들은 그녀를 데려오지 못했다.
그 후 천황은 사호비메에게 왕자의 이름, 양육 등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까고 묻고, 또 다음의 왕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고 물었다. 이렇게 하면서 천황은 사호비코를 공격하는것을 지연시켰지만, 결국 마지못해 공격하여 사호비코를 멸망시켰다. 여동생 사호비메도 오라버니 사호비코를 따라 죽었다.
호무치와케노미코(本牟智和気御子)
천황은 사호비메가 낳은 아이의 이름을 뭐라고 지어주면 좋을가고 사호비메에게 물었다.사호비메는 “이나기(稻城, 전쟁 때 방비를 위해 볏단을 쌓은 성채)가 탈때 불속에서 태어낳은 아이이기때문에 호무치와케노미코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천황은 호무치와케를 배에 태워 놀게 했다. 호무치와케는 수염이 가슴팍에 닿아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어느날, 백조가 울면서 날아갔다. 백조의 울음소리를 듣고 턱을 움직이면서 떠듬떠듬 말을 했다. 그러자 천황은 새를 쫓아 잡아오라고 명했다. 백조는 여러 곳을 지나, 끝내 코우시(高志)국에서 잡히고 말았다. 백조를 호무치와케의 앞에 끌고 왔지만, 호무치와케는 예전과 같이 말을 하지 못했다.
천황이 슬픔에 잠겨 자고 있을때 꿈속에 신이 나타나 “내 신전을 천황의 궁전처럼 만들어 준다면 호무치와케미코는 말을 할 수 있게 될것이다 .” 라고 신탁을 내렸다. 그래서 점괘로 신의 정체를 살펴봤더니, 이즈모대신(出雲大神)의 지벌이라는 것을 알았다.
천황은 호무치와케를 가신과 함께 이즈모(出雲)에 파견해 신에게 참배했더니, 호무치와케는 주문과 같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위 신하들은 말을 하게 된것을 기뻐하면서 사자를 파견해 천황에게 보고했다.
호무치와케는 이즈모대신을 참배한 후, 히나가히메(肥長比賣)라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몰래 여자의 모습을 엿보니 뱀이었다.호무치와케는 놀라고 무서워서 즉시 도망쳤다. 그러자 히나가히메가 바다를 비추면서 추격해 왔다. 더욱더 두려워진 호무치와케는 야마토(大和)로 도망쳤다.
케이코우(景行)천황(제12대)과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倭建命)
케이코우(景行)천황에게는 많은 왕자와 공주가 있었다. 그중 오오우스노미코토(大碓命)와 오우스노미코토(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 倭建命)라는 형제가 있었다. 어느날, 오오우스는 천황인 아버지의 명을 받아, 미노노쿠니(美濃國)에 살고 있는 에히메(兄比賣) 와 오토히메(弟比賣)라는 미인 자매를 천황의 왕비로 맞이하기 위해 사자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오오우스는 두 자매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고, 거짓으로 다른 여인을 데려와서 천황께 바쳤다.이 사실을 안 천황은 거짓으로 온 여인을 만나지도 않고 울울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 후의 일이다. 천황은 오우스에게 “너의 형은 어찌하여 아침 저녁의 식사자리에 나오지 않는가. 너가 친절하게 가르쳐 깨닫도록 해주어라.”라고 말했다.그런데도 식사자리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에 수상쩍게 생각한 천황은 다시 오우스한테 “넌 형을 잘 가르쳐 주었느냐?”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미 잘 가르쳐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가르쳐 주었는가고 물었더니 오우스는 “새벽에 형이 변소에 간 사이에 기다렸다가 붙잡아서, 팔다리를 잘라 거적에 싸서 던져버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을 듣고 천황은 아들의 사납고 난폭한 성격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멀리 쿠마소(熊曾)에 있는 쿠마소타케루(熊曾建)라는 두 형제를 평정하도록 파견했다.
오우스는 여자로 변장하여 연석에서 쿠마소타케루에게 접근하여 방심하게 한후 두 사람을 살해했다. 두번째 쿠마소타케루를 치려고 할때, 쿠마소타케루는 “우리보다 더 용맹한 남자가 야마토에 있었네요. 그대에게 내 이름을 바치겠습니다. 이제부터 야마토타케루노미코라고 자칭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죽었다.
쿠마소타케루를 토벌한 후 귀로에 오른 야마토타케루는 이즈모(出雲)에 들려 이즈모타케루(出雲建)를 감쪽같이 속여서 치고 야마토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동방십이도의 난폭한 신들과 복종하지 않은 자들을 평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야마토타케루는 동쪽 정벌에 가는 도중에 고모 야마토히메노미코토(倭比賣命)한테 들려, 아버지의 매정한 처사를 한탄하면서 “아버지는 나같은 사람은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는거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쿠사나기노츠루기(草薙劍)는 이때 야마토히메(倭比賣)로부터 받은 것이다.
오토타치바나히메노미코토(弟橘比売命)
동쪽 정벌이 시작했을때, 오하리노쿠니(尾張國)에 들린 야마토타케루는 미야즈히메(美夜受比賣)라는 여자와 결혼 약속을 하고 동쪽으로 전진했다.
사가미노쿠니(相模國)에서 적에게 속임수를 당하고 화공을 당해 위기에 빠졌지만, 이세(伊勢)에서 고모 야마토히메노미코토(倭比賣命)한테서 받은 주머니와 쿠사나기노츠루기(草薙劍)를 이용해서 오히려 상대를 불로 공격하여 적을 태워 죽였다. 고모가 준 주머니에는 불을 내는 부싯돌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후 야마토타케루는 하시리미즈(走水)의 바다(도쿄만)를 건너가기 위해 배를 탔지만, 해협신의 방해로 폭풍우를 만나 파도가 거세게 치는 바다를 건너갈수 없었다. 그때 배에 같이 탄 야마토타케루의 아내, 오토타치바나히메(弟橘比賣)가 “제가 당신을 대신하여 바다로 들어가겠습니다. 당신은 임무를 완성하고, 천황에게 보고하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거친 파도는 잠잠해지고 배도 전진할수 있게 되었다.
칠일후 오토타치바나히메((弟橘比賣)의 빗이 해변으로 흘러 들어와, 능묘를 만들어 그 빗을 안치했다고 한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倭建命)의 붕어
동쪽 정벌을 끝내고 오하리(尾張)로 돌아온 야마토타케루는 오하리노쿠니노미야츠코(尾張國造)의 선조 미야즈히메(美夜受比賣)와 결혼한다. 그리고 야마토타케루는 쿠사나기노츠루기(草薙劍)를 미야즈히메에게 맡기고, 이부키노(伊服岐能)산의 신을 맨손으로 무찌르겠다고 말하면서 길을 나섰다.
야마토타케루는 이부키노산에서 마주친 흰 멧돼지를 산신이 보낸 사자로 생각하고, 산신을 죽인 후에 죽이겠다고 말하고 산을 더 올라갔다.실은 이 흰 멧돼지가 산신이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야마토타케루는 신에게 현혹당하고 말았다. 그 후 병으로 인해 휘청거리면서 방황한 끝에 미츠노사키(御津前, 현재 미에〔三重〕현쿠와나〔桑名〕군)라는 지역에 도착해, 소나무 밑에서 그전에 잊어버리고 간 검을 발견하고, 오하리(尾張)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세(伊勢)의 노보노(能煩野)에 도착했을 때 고향 야마토를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다. 임종때에는 미야즈히메 침상에 두고 온 쿠사나기노츠루기(草薙劍)를 노래하고 붕어했다.
야마토타케루가 돌아간 후, 야마토에서 황후와 자식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야마토타케루의 시신에 매달려 울었다. 야마토타케루는 커다란 흰 물떼새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황후와 자식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흰 물떼새를 쫓아갔다. 이때 부른 4수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천황의 대장(大葬)때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흰 물떼새가 된 야마토타케루는 야마토를 날아 넘어 카와치(河內)에 내렸다가 다시 하늘높이 날아 갔다고 한다.
츄우아이(仲哀)천황(제14대) ・진구(神宮)황후・오우진(應神)천황(제15대)
츄우아이(仲哀)천황과 황후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息長帶日賣命)는 큐슈(九州) 츠쿠시(筑紫)의 카시히(訶志比)궁(현재 후쿠오카〔福岡〕시)에 있으면서 쿠마소(熊曾)를 토벌하려고 했다. 천황은 거문고를 타면서 타케우치노스쿠네(建內宿禰)를 강신마당에 세워 신의 뜻을 살펴보자 했다. 그러자 오키나가타라시히메에게 신이 내려 그녀를 통해 신탁을 내렸다. “서쪽에 금은보화가 가득한 나라가 있다. 나는 저 나라를 복종시키려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신탁을 받은 천황은 높은 곳에 올라가 서쪽을 바라보면서 “그런 나라는 보이지도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신이다.”라고 말하면서, 거문고를 타는 것을 멈추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신은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이 나라는 네가 다스릴 나라가 아니다. 너는 어디 한구석으로 가거라.”라고 했다. 이 신탁에 두려움을 느낀 타케우치노스쿠네는 천황에게 거문고를 계속 타도록 재촉했지만, 천황은 미적지근한 태도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이윽고 거문고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미심쩍어서 불을 밝히고 들여다보니 천황은 이미 붕어했다.
이 일대사에 타케우치노스쿠네는 오오하라에(大祓)를 진행하여 다시 한번 신탁을 청했다.그러자 신은 “이 나라는 황후의 배속에 있는 왕자가 다스려야할 나라이다.”라고 고하면서, 이것은 아마테라스의 뜻이며 신탁을 내린 것은 소코츠츠노오(底箇男)・나카츠츠노오(中箇男) ・우와츠츠노오(上箇男) 의 삼신(스미요시대신住吉大神)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천신과 국토의 신, 산신과 강과 바다의 여러 신을 모시고, 나의 신령을 배위에 진좌시켜주면, 서쪽 나라를 복종시킬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아메노히호코(天之日矛) ・ 아키야마(秋山) 신과 하루야마(春山) 신・오우진(應神)천황의 자손
오우진(應神)천황조의 마지막에 “又、昔”로 서두를 떼면서, 신라 국왕의 아들인 아메노히호코(天之日矛)의 도래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신라국에 신분이 천한 어떤 여인이 있었다. 어느날 여인의 음부에 햇빛이 비치면서 이로 인해 임신을 하게된다. 이윽고 여인이 출산을 했는데 빨간 구슬이었다. 후에 아메노히호코가 이 구슬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빨간 구슬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아메노히호코는 이 여인과 혼인하여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화로 인해 아내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야마토의 나니와(難波)로 도망쳐왔다. 아메노히호코도 뒤를 쫓아왔지만 나니와(難波)의 해협의 신의 방해로 상륙할수 없어, 일본해로 되돌아가 타지마(多遲摩)국(현재 효고〔兵庫〕현 북부)에 상륙하여 머물렀다.그리고 그 고장의 여인과 결혼하여 자손을 낳았다.
이어서 아메노히호코가 갖고 온 여덟종류의 보물은 즉 신이며, 그 신의 딸이 이즈시오토메(伊豆志袁登賣)라는 여신이라고 기록을 한 후, 그 여신을 둘러싸고 하루야마(春山) 신과 아키야마(秋山) 신 두 형제신의 싸움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여인을 둘러싼 두 남자의 투쟁이야기가 끝난 후에 또 오우진(應神)천황 관련의 기사로 되돌아가며, 오우진천황의 왕자인 와카노케노후타마타노미코(若野毛二俣王)의 계보를 기록한다. 마지막에 오우진천황 능의 소재지를 기록하면서 『고사기』중권은 여기서 마친다.

하권

닌토쿠(仁德)천황(제16대)과 이와노히메(石之日賣) 황후
닌토쿠(仁德)천황의 황후 이와노히메노미코토(石之日賣命)는 질투심이 매우 강했다. 천황을 섬기는 왕비들도 궁중에 맘대로 드나들수 없었다. 여인과 관련된 소문을 듣기만 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질투했다. 그러나 천황은 많은 여인을 궁으로 맞이하고싶어 했다.
우선 키비(吉備)의 쿠로히메(黑日賣)를 궁으로 맞이했지만, 그녀는 황후 이와노히메의 질투가 무서워서 본국으로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천황은 배를 타고 내려가는 쿠로히메를 사모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와노히메가 천황의 노래를 듣고 격노하여 사람을 파견해 쿠로히메를 배에서 내리게하여 육로로 걸어서 가게 했다. 그래도 쿠로히메에게 미련이 남은 천황은 황후에게 “아와지(淡路)섬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키비(吉備)까지 찾아가서 쿠로히메와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천황은 이복동생인 야타노와키이라츠메(八田若郎女)를 궁중에 불러들이려고 했다. 어느날, 이와노히메가 연회에 사용할 떡갈나무 잎을 따러 키이(紀伊)국에 간 틈을 타서, 천황은 야타노와키이라츠메를 궁중에 불러들여서 밤낮으로 놀고 있었다. 이것을 어떤 자가 궁으로 돌아오는 이와노히메에게 일러바쳤다. 이 말을 들은 이와노히메는 매우 분노하여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친정이 있는 야마토의 카츠라기(葛城)로 배를 향하게 해서, 도중에 있는 야마시로(山代)의 츠츠키(筒木)궁에 머물러 있었다. 당분간 별거상태로 있었지만 천황은 신하를 파견하고, 또 천황이 친히 찾아가는 사이에 황후도 차츰 화가 풀려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번에는 야타노와키이라츠메의 여동생 메도리노미코(女鳥王)에게 청혼하려고 이복동생 하야부사와케노미코(速總別王)를 중매 사자로 파견했다. 그러나 메도리는 “천황은 황후 이와히메의 반대로 언니 야타노와키이라츠메를 궁으로 맞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천황을 저도 모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전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중매로 온 하야부사와케와 결혼했다. 그리고 하야부사와케에게 “천황을 죽이세요.”라는 뜻이 담긴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알게 된 천황은 병사를 모아 하야부사와케와 메도리를 죽이려고 했다. 하야부사와케와 메도리는 서로 손잡고 도망쳤지만, 야마토에서 이가(伊賀)로 향하는 도중에 추격자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
인교(允恭)천황(제19대) 카루노미코(軽皇子)와 카루노오오이라츠메(軽大郎女)
인교(允恭)천황이 붕어한 후, 태자 카루노미코(軽皇子)는 친여동생 카루노오오이라츠메(軽大郎女)와 밀통했다.이 사건때문인지 문무백관들과 천하의 백성들은 카루노미코를 등지고 동생 아나호노미코(穴穂御子=안코우(安康)천황)에게 귀순했다. 이 사실을 안 카루노미코는 오오마에오마에노스크네(大前小前宿禰)라는 신하의 집으로 도피했다. 아나호노미코가 군병을 끌고 오오마에오마에의 집을 둘러싸자 오오마에오마에는 카루노미코를 잡아 아나호미코에게 인도했다. 죄인의 몸이 된 카루노미코는 이요(伊予)온천(현재 도우고〔道後〕온천)으로 유배되었다. 혼자 남은 카루노오오이라츠메(도중에 이름이 소도오리노미코〔衣通王〕로 바뀐다)는 한탄의 노래를 부르면서, 이요온천까지 쫓아가 카루노미코와 함께 죽음을 택했다.
안코우(安康)천황(제20대) 살해
안코우(安康)천황은 가신의 참언을 그대로 듣고, 닌토쿠(仁德)천황의 왕자 오오쿠사노미코(大日下王)를 죽이고, 그의 본처인 나가타노오오이라츠메(長田大郎女)를 자신의 황후로 삼고 그의 아들 마요와노미코(目弱王)를 같이 맞아들였다.
그때 마요와노미코는 일곱살이였다. 안코우천황은 황후에게 “마요와가 성인이 되어 내가 친아버지를 죽인것을 알게 되면 나를 해치려고 하지 않을가 걱정되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 어전밑에서 놀고 있던 마요와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말았다. 그리고 마요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즉시 행동에 옮겼다. 천황이 자고 있는 틈에 침입해, 그 옆에 있는 큰 칼을 뽑아 천황의 목을 베고 츠부라오호미(都夫良意富美)의 집으로 도망쳤다.
오오하츠세노미코(大長谷王)의 포학
형 안코우(安康)천황이 마요와노미코(目弱王)에게 살해당했다는 사건을 듣고 오오하츠세(大長谷,유우랴쿠雄略천황)는 즉시 친형 사카이노쿠로히코노미코(境之黒日子王)에게 찾아갔다. 그러나 쿠로히코가 우물쭈물하면서 태도가 분명치 않았기때문에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죽여버렸다.

그리고 다른 형 야츠리노시로히코(八瓜之白日子) 에게 찾아갔으나, 시로히코도 쿠로히코와 같은 태도로 우물쭈물 주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땅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여 죽여버렸다. 드디어 오오하츠세는 군사를 이끌고 마요와가 도피해있는 츠부라오호미(都夫良意富美)의 집을 포위하여 싸웠다. 이윽고 마요와 왕자와 츠부라오호미는 화살도 다 떨어지고 힘도 떨어져, 츠부라오호미는 칼로 마요와를 죽이고 그 칼로 자기 목을 베어버렸다.
그 다음에 오오하츠세는 사촌형제인 이치노베노오시하니노미코(市辺之忍歯王)를 불러 같이 사냥을 갔다.이치노베노오시하의 언동에 불신감을 느낀 오오하츠세의 가신이 오오하츠세에게 참언을 했다. 오오하츠세는 그 참언을 듣고 이치노베니노오시하를 사살해버렸다.
이와 같이 오오하츠세 이외의 황위계승 자격을 가진 자는 하나하나 다 죽어가고, 혹은 오오하츠세가 죽여버린 결과, 황위를 이어받을 사람은 오오하츠세만 남게 되어, 그가 즉위하게 된다.
카츠라기산의 큰 멧돼지~카츠라기의 히토코도누시신
유우랴쿠(雄略)천황은 즉위후, 카와치(河內)에 행차하여 황후로 맞이할 와카쿠사카베노미코(若日下部王)에게 청혼을 한다. 그리고 미와(三輪)산기슭의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처녀 아카이코(赤猪子)를 만나 결혼 약속을 하지만 80년동안 잊어먹고 있었던 이야기, 요시노(吉野)에서 만난 처녀와 결혼한 이야기 등, 천황의 행차와 혼인과 관련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리고 카츠라기산에 올라갔을때, 커다란 멧돼지가 나타났기에 천황이 활를 쏘았다. 멧돼지는 화를 내며 으르릉거리면서 천황을 향해 다가왔다. 이에 천황은 몹시 화가난 멧돼지가 무서워 오리나무 위로 도망쳐 올라가 “천황인 내가 사냥을 한다, 상처입은 멧돼지의 신음소리에 놀라 도망쳐 올라온, 유난히 눈에 띄는 오리나무 가지여.” 라고 자기를 구해준 오리나무를 칭송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또 이러한 일도 있었다. 천황이 카츠라기산에 백관들과 간이 올랐을 때, 자신과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천황의 행렬과 똑 같은 복장을 입은 사람들과 만났다. 천황이 물었더니,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은 카츠라기산의 신, 히토코토누시대신(一言主大神)이였다.천황은 황송해서 절을 올리며 칼과 화살 입고 있던 옷을 헌상했다. 천황의 일행들이 돌아갈때 히토코토누시 대신은 궁의 부근까지 배웅해주었다.
켄소우(顯宗,제23대) 닌켄(仁賢,제24대)의 이야기
아버지 이치노베노오시하(市辺之忍歯,리츄우履中천황왕자)가 오오하츠세(大長谷,유우랴쿠雄略천황)에게 살해당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오케노미코(意祁王,훗날의 닌켄仁賢천황) 와 오케노미코(袁祁王, 훗날의 켄소우顕宗천황) 두형제는 하리마(針間)국으로 도망쳤다. 도중에 얼굴에 문신을 한 돼지키우는 노인한테 음식을 빼앗기는 봉변을 당하고, 하리마에 도착하여 시지무(志自牟)라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말과 소를 기르는 자로 살고 있었다.
그 후 즉위한 유우랴쿠(雄略)천황도 붕어하고, 유우랴쿠천황의 왕자 세이네이(淸寧)천황이 즉위했지만, 이 천황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천황이 붕어한 후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찾기 위해 우선 리츄우(履中)천황의 황녀이며, 이치노베노오시하(市辺之忍歯)의 여동생인 이이토요노미코(飯豊王)를 궁으로 맞아들였다. 한편 야마노베노무라지오다테(山部連小楯)라는 자가 하리마(針間)국의 장관으로 임명하여 부임했다.오다테는 시지무의 집에서 하인처럼 일하고 있는 두 왕자를 발견하여 깜짝 놀라 감동하면서,인차 궁중으로 사자를 파견했다. 고모인 이이토요노미코도 매우 기뻐하면서 두 왕자를 야마토의 궁으로 불러들였다.
두 왕자는 서로 왕위를 양보하면서 동생인 오케가 먼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켄소우(顕宗)천황이다.즉위한 후, 미천한 신분의 노파가 찾아와 켄소우천황의 부왕인 이치노베노오시하의 유골을 묻은 곳을 알려주었다. 천황은 즉시 능묘를 만들어 유골을 묻고 오키메(置目)노파에게 은상을 하사했다. 그리고 켄소우천황은 자신의 부왕을 살해한 유우랴쿠천황의 능을 파헤치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 원한을 풀려고 했으나, “그런 일을 하면 후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형의 말을 듣고 능의 흙을 조금 파는 것으로 끝냈다.

부레츠(武烈)천황 (제25대)
오하츠세노와카사자키노미코토(小長谷若雀命)(부레츠武烈천황)는 하츠세(長谷)의 나미키(列木)궁에서 8년 천하를 통치했다. 이 천황에게 자식이 없었기에 천황 붕어후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없었다. 그래서 오우진(應神)천황의 5대 후손인 오호도노미코토(袁本杼命)를 치카츠오우미국(近淡海國,현재 시가현滋賀縣)에 불러 닌켄(仁賢)천황의 황녀인 타시라가노미코토(手白髮命)와 결혼시켜 천하를 통치하게 했다. 이것이 제26대 케이타이(繼體)천황이다. 그후 안칸(安閑), 센카(宣化), 킨메이(欽明), 비타츠(敏達), 요우메이(用明), 수진(崇峻)천황의 황위 계승, 황비와 황자 황녀, 년령과 능 등을 기록하여, 스이코(推古) 천황대의 기술로 고사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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